필름 편집실에서 릴 갈아 끼우던 시절 얘기다. 1999년 폭스 사내 시사회 끝나고 한 선배가 내게 물었다. "야, 너 중간에 브래드 피트 번쩍이는 거 봤냐? 내가 졸았나?" 못 봤다고 했다. 그때는 그게 계획된 연출일 줄은 몰랐다. 알고 보니 편집 중간에 프레임 몇 장을 끼워넣는 기법은 파이트 클럽이 업계 실무자들 사이에서 먼저 입소문이 났다. 그 영사기사는 알리익스프레스 따위가 없던 시절, 아날로그 소품팀의 기막힌 꼼수 하나로 영화사에 남을 장난을 친 셈이다.
## 스플라이스 도둑들
타일러 더든은 우리가 영화관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팝콘 먹는 바로 그 순간에 이미 일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영화 전반부 네 군데에서 그가 등장한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1. 지원 그룹 씬 (6분 19초경) - 복도에서 화자가 복사기 앞을 지날 때 오른쪽에 서 있다.
2. 의사 면담 씬 (12분 37초경) - 화자가 어깨너머로 TV를 볼 때 의사 뒤에서 실루엣.
3. 마라 싱어 첫 대면 직전 (29분 57초경) - 지원 그룹 안내 테이블 뒤에서 한 프레임.
4. 비행기 탑승씬 (1: 05: 45경) - 공항 이동 보도에서 단체 앞을 가로지르는 피트의 뒷모습.
핀처 편집실에선 이걸 '스플라이스 도둑'이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필름을 자르고 한 프레임짜리 이미지를 끼워넣어 타임라인을 도둑질했다는 거다. 작업하던 편집기사 제임스 헤이굿이 인터뷰에서 실토했듯, 이건 1초도 안 되는 24분의 1초짜리 침입이다. AV 시절 스테인벡 편집대에서 직접 핀셋으로 끼워넣었다고 하더라니까. CG 없던 시절 순수 하드웨어 기술력의 정점이었다.
## 영사실에서 생긴 일
여기서 내 영역으로 넘어온다. 35mm 릴을 실제 영사기에 걸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저런 1프레임 삽입은 상영 중에 절대 깔끔하게 보이지 않는다. 셔터 타이밍 문제 때문에. 극장마다 노후된 영사기의 셔터 각도가 조금씩 달라서, 어떤 곳에선 0.04초짜리 타일러가 완전히 날아가는 거다.
소품 담당자의 시점에서 보면 이게 더 우습다. 우리 셔츠룸에 놓을 소파 하나 고르는 데도 예산 문제로 머리 터지는데, 편집실에서 저딴 짓을 한다는 건 제작비가 남아돈다는 증거니까. 당시 파이트 클럽 총제작비는 6300만 달러. 그중 편집 부서에 배정된 예산은 200만 달러 언저리였다. 헤이글드가 저 장난질을 위해 별도 작업실을 썼다는 게 내부 회계 감사에서 드러났다. 프레임 4장 삽입에 들어간 인건비와 오버타임 수당만 1만 2천 달러.
## 알리표 잉크보다 싸게 먹힌 사고
하지만 정작 소품팀에겐 더 기가 막힌 비화가 있다. 지원자 그룹 씬에 등장하는 타일러 더든의 재킷.
그 유명한 빨간 가죽 재킷. 코스튬 디자이너 마이클 카플란은 원래 케네스 콜 제품을 협찬받으려 했으나 수량 부족으로 무산됐다. 결국 그가 선택한 건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한 창고형 중고숍이었다. 8달러 50센트. 거기 있던 낡은 가죽 재킷에다가, 세트장 페인트 팀에서 빌린 2달러짜리 붉은색 도료로 덧칠했다. 그걸 우리는 '전설의 화이트 오크 레드'라 부른다.
내가 지금 마포 유흥 바닥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건, 결국 저런 즉흥적인 결정이 명장면을 만든다는 거다. 홍대 셔츠룸 현장에서도 똑같다. 고객이 원하는 건 완벽한 무대가 아니라,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디테일이다. 마치 저 4프레임짜리 타일러처럼. 보려는 자만 보는 것.
참고로, 매트릭스의 총알시간은 그로부터 6개월 뒤에 나왔다. 워쇼스키 자매가 피치 클럽의 저 '스플라이